나눔

제목빈첸시안가족 사순시기 담화문2025-03-06 11:26
작성자

 

 


 

 

로마, 202535

재의 수요일

 

전 세계 빈첸시안 가족에게

 

사순시기 담화문

 

우리가 완전히 버려졌다고 느낄 때, 우리의 정원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가장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합니다!”

A L I V E

 

사랑하는 빈첸시안 가족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화가 항상 우리와 함께하길 바랍니다

 

"얼라이브(Alive)"1993년에 개봉한 영화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우루과이 럭비팀이 친선 경기를 위해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칠레로 향하던 중, 19721013일 금요일, 안데스 산맥에 비행기가 추락한 실화를 다루고 있습니다.

안데스 산맥을 비행하던 중, 구름을 벗어나자마자 비행기는 난기류를 만나 산과 충돌했습니다. 충격으로 날개와 꼬리 부분이 동체에서 분리되었고, 동체는 산비탈을 따라 미끄러져 내려간 후 멈춰 섰습니다. 이 과정에서 여섯 명의 승객과 한 명의 승무원이 기체에서 튕겨 나가 사망했고, 곧이어 두 조종사를 포함한 여섯 명이 추가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생존자들은 동체 안으로 들어가 서로 몸을 맞대어 체온을 유지하며 밤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 두 명이 더 사망했습니다. 산속에서는 사냥할 것도, 채집할 것도 없었고, 생존자 중 한 명은 발견된 초콜릿 한 통과 와인 한 상자를 나누어 먹으며 배급제를 시행해야 한다고 선언했습니다.

그 주 후반부에 눈사태가 비행기를 덮치면서 기체 내부가 눈으로 가득 찼습니다. 이로 인해 생존자 8명이 질식사하였고, 남은 22명의 생존자들은 밖에 거센 눈보라가 몰아치는 것을 보고 기체 안에 머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 몇 주 동안 또 다른 6명의 승객이 목숨을 잃었고, 생존자들은 극한의 환경 속에서 계속해서 싸워야 했습니다.

 

생존자 중 한 명은 그의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비행기에 탑승했었고, 충돌 후 의식을 되찾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가 이미 숨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살아남은 여동생을 극진히 보살피며 곁을 지켰습니다. 사고 발생 후 약 두 달이 지나, 그는 여동생이 부상으로 인해 며칠 내에 사망할 것임을 깨닫고, 산을 벗어나 도움을 찾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생존자 한 명이 그와 함께 길을 떠났습니다.

 

영하의 기온 속에서 적절한 의복과 신발도 없이 12일 동안 산을 헤맨 끝에, 두 생존자는 마침내 구조대에 연락하여 남은 동료들의 위치를 알릴 수 있었습니다. 이후 두 대의 헬리콥터가 현장으로 출동했으며, 그중 한 대에는 먼저 구조된 두 사람이 타고 있었습니다. 헬리콥터가 하늘에 나타나자, 남아 있던 14명의 생존자들은 마침내 구조될 것이라는 희망에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비행기에 탑승했던 45명 중, 혹독한 추위와 극한의 환경 속에서 72일을 버틴 끝에 살아남은 사람은 단 16명이었습니다. 그들이 견뎌야 했던 추위는 섭씨 -40도까지 내려가는 혹한이었습니다.

 

영화 "얼라이브(Alive)"를 다시 보고, 거의 30년 전 이 영화를 여러 번 본 후 남겨두었던 노트를 다시 펼쳐 보면서, 저는 올해 사순시기 담화문의 제목이 담고 있는 깊은 의미를 새롭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완전히 버림 받았다고 느낄 때, 우리의 정원에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합니다!"

 

비행기 사고 이후, 그리고 희망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던 날들이 지나면서, 생존자들은 완전히 버려졌다는 깊은 절망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후에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그 순간에도 누군가가 항상 함께하며, 그들이 처한 현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천천히 이끌고 계셨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하느님과 문명 속에서 가려진 하느님이 있습니다. 그리고 산에서 내가 만난 하느님이 있습니다.” 

그것은 두 달 반에 걸친 긴 영적 피정이었습니다.”

절망의 순간, 거친 말과 생각, 삶의 무의미함과 실망 속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서서히 빛의 길로 인도하시며 살아 계신 하느님과의 만남으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나이다...” 


영하의 추위 속에서 우리는 수없이 함께 기도했습니다. 젊고, 생기 넘치고, 꿈으로 가득 찬 청년들이, 신앙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 그것을 하느님 위에 세워가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을 해가 뜨고 질 때, 맑은 밤하늘 아래 가득 퍼지는 보름달의 빛 속에서 느꼈습니다. 장엄한 산맥, 끊임없이 펼쳐진 얼음과 눈, 눈보라와 눈사태 속에서 그분의 신비로운 현존을 경험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셨고, 우리는 점점 그분이 전하고자 하시는 뜻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눈앞에서 가족과 친구들이 계속해서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마침내 그것을 '신비로운 체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순간에 도달했습니다.” 그들은 완전한 절망 속에서 그들 내면의 정원이 자라기 시작하는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그 정원에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안데스 산맥의 비행기 사고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처럼, 자비의 신비가(St. Vincent de Paul, the Mystic of Charity)였던 성 빈첸시오 드 폴 또한 예수님과의 깊은 개인적 체험을 한 후, 자신의 내면의 정원에서 다섯 송이의 아름다운 꽃을 피워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꽃들은 그를 "신비로운 체험(mystical experience)"으로 이끌었습니다. 이 다섯 송이의 꽃은 바로 단순(Simplicity), 겸손(Humility), 온유(Gentleness), 절제(Mortification), 영혼 구원을 위한 열정(Zeal for the salvation of souls)입니다.

 

성 빈첸시오 드 폴은 우리의 내면의 정원에서 자라는 이 다섯 송이의 아름다운 꽃들을 다섯 개의 매끄러운 돌”(Common Rules XII, 12)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칠 때 사용한 다섯 개의 돌을 떠올리게 합니다. 다윗은 선(), 곧 하느님께로부터 온 모든 것을 상징하며, 골리앗은 악(), 곧 우리의 유혹, 자기중심성, 그리고 예수님과의 관계를 방해하고 무시하려는 모든 것을 대표합니다. 이 다섯 가지 덕목단순, 겸손, 온유, 절제, 영혼 구원을 위한 열정은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린 다섯 개의 돌처럼, 우리의 신앙 여정에서 악과 싸우고 승리하도록 돕는 무기가 됩니다. 이 다섯 송이 꽃, 다섯 개의 매끄러운 돌, 다섯 가지 덕목은 성 빈첸시오의 신앙순례의 토대가 되었으며, 오늘날 우리가 "빈첸시안 영성(Vincentian Spirituality)"이라 부르는 영성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생존자들은 예수님께서 직접 이끄신 72일간의 영적 피정을 통해, 완전히 버려졌다는 느낌에서 벗어나 예수님의 손에 자신을 맡기고 "신비로운 체험"에 마음을 열면서 다섯 가지 덕목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발견된 초콜릿과 와인이 모두 바닥나자, 생존자들은 극한의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먼저 세상을 떠난 동료들의 육신을 먹어야 하는가? 이 문제를 두고 오랜 논의와 갈등, 혐오감, 의심이 이어졌지만, 결국 그들의 내면에서는 다섯 송이의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함의 꽃은 우리가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우리의 모습 그대로, 부끄러움이나 무가치함을 느끼지 않고 다른 이들 앞에 설 수 있도록 해줍니다. “, 단순함이여! 오직 하느님의 시선만을 바라보며, 하느님 외의 다른 동기를 거부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만 머무르지 않는구나!” (CCD XII, 252).

 

겸손의 꽃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전능하거나 모든 것을 알고 있거나 원하는 것을 다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기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해줍니다. 그러나 최종적인 말씀을 하시는 분은 예수님이시며, 그분께서 가장 잘 아십니다. “... 겸손은 하느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완전히 비우고, 하느님을 우리 마음에 모시기 위해 자신을 극복하며, 다른 이들의 존경이나 좋은 평가를 구하지 않고, 모든 허영심의 충동과 끊임없이 싸우는 데 있습니다.” (CCD XII, 247).

 

온유의 꽃은 우리가 온유함에 반하는 모든 행동이 결국 아무런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며, 오히려 불화와 상처, 고통만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피어납니다. “온유함은 우리가 받은 모욕과 불의를 용서하도록 도울 뿐만 아니라, 그런 일을 행하는 사람들조차도 온유하게 대하고 부드러운 말로 대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CCD XII, 159).

 

절제의 꽃은 우리가 건강하지 못한 방식으로 집착하는 것들과 사람들을 내려놓고, 힘든 순간과 고통, 투쟁을 기꺼이 받아들여 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들을 돕도록 이끌어 줍니다.

우리는 사실 기쁨보다 고통에, 장미의 향기보다 그 가시에 더 민감합니다. 이러한 불균형을 조화롭게 하기 위해서는, 자연이 불편하게 여기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즐거움을 주는 것을 포기하며, 고통이 가져오는 선함을 숙고함으로써 마음을 고통에 기울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고통이 다가올 때 놀라거나 낙담하지 않도록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CCD IV, 55).

 

영혼 구원에 대한 열정의 꽃은 세상의 모든 인간이 언젠가 하늘나라에 이를 수 있도록 불타오릅니다. “다섯 번째 가르침은 열정으로, 이는 하느님께 기쁨이 되고 이웃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순수한 열망에서 비롯됩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이웃의 구원을 이루기 위한 열정입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완전한 것이 있을까요?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불이라면, 열정은 그 불꽃이며, 사랑이 태양이라면, 열정은 그 광선입니다. 열정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 안에서 무조건적인 것입니다.” (CCD XII, 250).

 

16명의 생존자들이 가꾼 16개의 정원에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다섯 송이 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살아남기 위해 죽은 승객들의 살을 먹는 것을 받아들이는 차원을 넘어, 그들의 신앙의 핵심을 깊이 깨닫고 예수님을 본받는 순간으로 이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자신의 몸과 피를 내어주셨듯이, 우리 또한 서로를 위해 자신의 살과 피를 내어주어야 한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우리 주님의 몸과 피가 이 성사 안에 실재한다는 진리를 깨닫게 해주는 이유는, 요한복음에서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빵은 내 몸이며,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포도주는 내 피다라고 기록된 말씀을 생각해보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이것을 다른 의미로 이해하려 하는 이단자들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이 진리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스스로 맹세까지 하시며 이를 확증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누구든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지 않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CCD XI, 176).

 

그들은 단순히 이미 죽은 이들의 살을 먹는 것에 합의한 것이 아니라, 만일 자신이 죽게 된다면 다른 이들이 살아남아 생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자신의 몸을 음식으로 제공하기로 함께 서약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생존의 결정이 아니라, 하나의 신비로운 친교, 신비로운 체험이 되었습니다!

 

사순시기에 들어서며, 가능하다면 인터넷을 통해 시청할 수 있는 영화 "얼라이브(Alive)"를 보거나, 이 경험에 대해 기록된 책을 읽어보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 자신을 부활절을 준비하는 기도와 묵상, 성찰의 시간으로 이끌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후, 생존자들 중 일부는 사고 현장으로 다시 돌아가, 남아 있던 유해를 돌무더기 아래에 정성스럽게 묻고, 29명의 희생자와 16명의 생존자를 기리는 십자가를 세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몸! 아멘.

 

 

성 빈첸시오 안에서 형제된 마음으로,

토마즈 마브릭 전교회 총장 신부




영한번역: 사랑의 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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